피의 백작부인 에르체베트 바토리

기타등등/이야기보따리 2008/05/10 16:06
피의 백작부인이라는 별명과 함께 흡혈귀 전설의 모델로도 유명한 에르체베트 바토리. 그녀는 트란실바니아(현재 루마니아 중서부 지역에 위치)의 바토리 가문에서 1560년 8월 7일에 태어났습니다.


▲ 에르체베트 바토리의 초상화

당시 유럽의 명문 가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막대한 재산과 영지를 잃지 않기 위해 근친혼(사촌이나 가까운 친척들과 결혼을 하는 것)을 많이 하곤 했는데 그로 인하여 결국 정신이상자나 기형아가 나오는 등의 문제가 많았습니다.

에르체베트 바토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의 친척중에는 동성애자, 악마숭배자, 색정광 등이 많았으며 그녀 역시 간질증세에 어릴때부터 난폭하고 괴팍한 성격을 지니게 됩니다.

1575년, 에르체베트는 15살만에 자신보다 5살 많은 헝가리의 페렌츠 나다스디 백작과 결혼하게 됩니다. 남편의 신분이 자신보다 낮았기때문에 그녀는 바토리라는 성을 계속 유지하고 사용할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결혼 이후 남편이 잦은 전쟁으로 인해 집에 돌아오는 일이 적어지자 그녀는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침실로 불러들여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자신의 미모를 더욱 더 아름답게 꾸미고 유지하는일에 몰두하게 됩니다.

1602년 남편이 전쟁터에서 사망하자 그녀는 슬로바키아 지방의 체이테 성으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거주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그녀의 악행이 시작됩니다.

체이테 성으로 이사한 에르체베트 바토리는 자신의 미모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각지의 처녀들 수백 명을 수시로 납치하여 살해하고 흐르는 피로 목욕을 즐겼습니다. 에르체베트 바토리는 이렇게 젊은 처녀들의 피를 받아 목욕을 하면 젊어질수 있다고 굳게 믿은 것입니다.

그녀는 흡혈귀적이면서도 사디스트(타인이 고통받는것을 즐기는 사람)적인 모습도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녀가 간질증세로 인해 쓰러지자 하녀가 그녀를 부축했는데 그녀는 오히려 자신을 부축하는 하녀의 팔을 물어 뜯은 것입니다. 하녀가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상처에서 나오는 흐르는 피를 보자 그녀는 만족감을 느꼈다고 하며 그때부터 타인의 고통받는 모습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이런 엽기적인 그녀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평민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딸을 돈을 받고 에르체베트 바토리에게 팔아넘기게 됩니다. 굳이 처녀들을 납치하지 않아도 평민들이 눈 앞의 돈에 눈이 멀어 자신의 딸들을 팔아넘기게 되어버린 것이죠.


▲ 에르체베트 바토리의 초상화

에르체베트 바토리는 야노슈, 이로나, 드루코라는 세명의 부하를 시켜 납치하거나 또는 돈을 주고 산 처녀들을 지하실에 가두고 처녀들에게 잔혹한 고문을 가했습니다. 또한 에르체베트 바토리는 자신이 직접 지하실로 내려가 처녀들을 고문함으로써 쾌락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연회를 열어 처녀들을 알몸으로 벗겨 차례차례 죽인뒤 그 피를 큰 통 속에 모아 옷을 벗고 그 안에 들어가 몸을 담그고는 아직 죽지 않은 처녀들의 신음을 들으며 흥분을 느끼기도 했으며 처녀들의 팔이나 가슴을 물어뜯어 생피를 빨아마시고 살을 먹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그녀가 살해한 여자의 수는 정확히는 알수 없지만 1600년부터 1610년까지 그녀가 작성한 일기에 따르면 모두 612명의 여자를 살해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또한 처녀들을 잔혹하게 죽이기 위한 갖가지 고문도구와 살해도구를 만들기도 했는데 새장에 처녀를 가두어 새장속에 설치된 칼날로 죽이는 기구, 톱니바퀴를 이용해 몸의 피를 전부 짜내는 기계, 관속에 처녀를 넣고 문을 닫아 바늘에 찔리게 하는 철의 처녀 등이 있습니다.(이후 철의 처녀는 고문 기구중에 하나로도 인기를 얻게 됩니다)


▲ 철의 처녀

그녀의 이런 잔혹한 행각은 1610년 감당했던 처녀가 탈출하여 당국에 신고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결국 그녀에 대한 정밀수사가 진행되게 됩니다. 1610년 2월 체이테성을 찾아간 조사원들은 성 지하실에 방치되어 있는 다수의 시체와 함께 소수의 생존자를 발견하게 되고 고문기구 및 매장된 시신들도 발견하게 됩니다.

1년이 지나 1611년, 헝가리의 비체에서 그녀에 대한 재판이 열리게 되지만 에르체베트 바토리 본인은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고 결국 그녀의 일족과 피해자들의 가족이 황제에게 탄원서를 제출하게 됩니다.

에르체베트 바토리는 황제의 명에 의해 결국 체포되지만 귀족이라는 신분으로 인해 사형은 면하게 됩니다. 대신 그녀를 따르던 부하들은 모두 사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비록 부하들과는 달리 사형은 면하게 되었지만 에르체베트 바토리는 종신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녀를 기다리는 감옥은 그녀가 살던 체이테 성 옥상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감옥은 귀족 신분에는 맞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햇빛은 손톱만큼도 들어오지 않고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폐쇄된 음침하고 절망스러운 독방감옥이었던것입니다. 더구나 당국은 감옥에 갇힌 그녀에게 약간의 물과 음식만을 제공해주어 그녀에게는 사실상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두컴컴하고 음침한 독방감옥에서 무려 3년동안은 목숨을 유지하며 간신히 버텨내지만 감금 4년만인 1614년 감시병에 의해 사망이 공식확인되면서 잔인한 악마로의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녀의 집이자 또한 마지막으로 숨을 거둔 장소인 체이테 성 옥상에는 아직도 당시의 교수대가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 주위에도 혹시 젊은 처녀의 피를 노리는,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꿈꾸는, 오늘도 피에 굶주린 광기어린 마녀가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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